
찢어진 눈동자에 담겨 있던 막바지의 빛이 흩어졌다. 최후의 생은 그대로 스러져 명을 달리했다. 마지막으로 허물을 벗기라도 하려는 듯 제자리에서 뒤틀린 뱀의 몸뚱어리가 이내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분명 찰나의 시간이었겠으나, 바닥에 온전히 닿을 때까지의 체공 시간은 제법 길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완전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이제는 상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승리했으므로.
땅굴의 바닥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구렁이라 하여도 좋을 정도의 뱀이 스러진 자리 뒤편의 벽에 자그마한 홈이 하나 나 있다. 처음에 땅굴로 들어왔을 때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가공을 마친 수정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던 그 자리. 아무도 그것을 건드리지 않았으나, 뱀의 최후가 남긴 거대한 흔적 탓일까. 땅굴 전체가 진동하는가 싶더니 홈이 파여 있던 벽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 하면, 글쎄.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쪽이 더 현명하다고들 하지만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기에 어느 쪽이 더 똑똑한 선택이 될지는 멋대로 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역시, 차라리 뱀을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이런 장면도 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따위의 시답잖은 생각으로는 무마할 수 없다는 이야기.
벽이 내려앉은 자리에 드러난 또 하나의 공터에는 인간의 유해가 쌓여 있다. 백골부터 시작하여, 어쩌면 생을 마감한 지 기껏해야 십 년 남짓 되었을 법한 이들의 것까지. 마른 뼛가루가 흙먼지에 섞여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은 공기에 녹아 들었다. 어쩌면 에덴에서 오고 가다 본 이의 얼굴이 있을지도 모르지. 만약에, 아주 어쩌면의 일이지만.
18기 탐사대는 이곳, 동토의 땅굴에서 전멸하였다. 모종의 이유로 무리에서 낙오되어 뱀과의 사투에 함께하지 못한 이가 들려 주었던 이야기가 귓바퀴를 스쳤다. 뻥 뚫린 천장에 부는 칼바람이 언제나 그랬듯 차가웠다. 생이 힘없이 바스라지고, 인간이 쌓아온 시간이 무너져 가는 겨울의 공기 속에서 불변하는 것은 추위뿐일지도. 실없는 깨달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공터 저편의 사다리만이 남아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자 마주하게 된 것은 여전히 얼어붙은 겨울의 땅. 속삭임을 넘어서 이제는 외로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 돌풍이 머리카락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어 대었다. 한때는 인간이 존재하였던, 어둠과 뱀에 의해 완전히 집어삼켜진 뒤에도 다시금 인간이 등불을 밝힌 희망의 대지. 등불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였다. 우리가 여즉 밟고 올라선 시간의 잔재가 그러하였듯이.
북북서로 난 철로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또 다시 지반 침하일까. 이번에 떨어지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가. 알지 못한다. 전에는 알기나 했던가?
알지 못한다는 건 거짓일지도.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뻔하게도 한 곳만이 남았다. 시간마저 얼어붙은 대지를 뒤로하고 나아가야 하는 곳은 만물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계절의 땅. 겨울을 맞은 이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바람이 터뜨리는 울음에 희미한 금속성의 소리가 섞여 들려 왔다. 잔뜩 몸을 움츠렸던 철로가 파열하는 듯 가벼운 폭음을 내며 전율하였다. 등불이 아닌, 무언가 타들어가는 듯 매캐한 냄새가 탈 무엇조차 남아 있지 않은 영구 동토의 위로 서서히 번졌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
몰아치는 새하얀 눈보라 사이로, 어두워서 보이지 않으나 형체 정도만 짐작할 수 있을 열차가 느리게 달리고 있었다. 이 철로, 끝 부분이 끊겨 있지 않았던가. 그런 류의 생각은 집어 치워도 괜찮지 않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열차는 평화롭게 움직였다.
기관실이 지나쳐 갔다. 기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마치, 조타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지난 여름의 항해처럼.
서서히 멈춰선 증기 열차의 문이 열렸다. 선로와 바퀴 사이에서 훅 끼쳐 나온 매캐한 연기 탓에 눈이 맵다.
열차의 안쪽에는, 임시 야영지 부근에 두고 왔던 짐들이. 빛이라고는 우리가 든 것이 전부인 이 지상에서, 무엇보다 그리웠던 타오르는 등불이 열차 곳곳에 매달려 있다. 꽤나 고급 열차였는지, 사용감은 조금 있으나 부드러운 원단으로 이루어진 각 칸의 좌석이 텅 비어 있기에 모두가 타고 나서도 넉넉한 공간이 남을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치이익, 경적 비슷한 소리가 겨울의 고요를 뚫고 흘러 넘쳤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외침이 대자연의 포효를 잘라 내었다.
곧 열차가 출발할 것이다.
모두가 짐작하고 있는,
마지막 행선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