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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화려한 의자에 걸터앉아 손가락을 몇 번 까딱하는 것으로 일체의 행위를 대신하던 게으른 군주의 말로는 항상 그런 류의 것이었지, 라 표현하려고 해도 그의 말로를 본 적이 없기에 차마 무어라 쓸 길이 없다. 과연 제 성에 손님을 불러오기 위하여 재해 비슷한 것까지 동원한 왕을 게으르다 칭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인 사안이나, 아무렴. 군주는 여전히 왕좌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고, 내려다 보이는 쪽은 명백히 우리들 쪽이었으므로.

 

 군주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망루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빛의 원천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그 자체적으로 다른 공간이라도 되는 마냥 찬란히 빛나던 천공성의 외벽이 하나 둘씩 무너져 감에 따라 공간을 채워 넣고 있던 빛의 덩어리도 점차 희미해져만 갔다. 패배했기 때문인가? 승리했을 때의 상황을 알 수 없기에, 이 상황이 패했기 때문에 내려지는 시련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한 번쯤 되찾고자 했던 빛이 또다시 무기력하게 스러져 가는 정경을 지켜 볼 뿐이다.

 

 잠깐, 천공성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곧-

 

 이상함을 눈치채려는 찰나 몸을 받쳐 주던 체스판의 앞뜰이 부서져 내렸다. 안전하지는 못한 방식이었으나, 적어도 목적지만큼은 확실하게 모셔가 주던 소용돌이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 소용돌이는 휘말렸을지언정 천공성이라는, 어쩌면 초대받았을지도 모르는 장소에 적절히 도착하도록 도와 주는 쪽이었지만 그 연회장이 무너져 내린 지금 이 창공에 발을 디디고 설 곳은 없다. 창공에서 그의 지배자와 대처하였기 때문에 편대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였다만, 날 수 없는 인간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느니만큼 설 자리가 무너지는 것은 곧 대형 재해와도 같다.

 

 심리적으로 설 자리가 무너진다는 소리는 종종 하였으나, 물리적으로 설 자리마저도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역시 해 본 적 없는데. 신이 인간에게 합당한 발판을 주지 않을 거였다면 적어도 날개만이라도 모든 이에게 달아 주었어야 하는데, 역시 신이라는 작자들은 터무니없이 불공평하다- 불만 어린 소리가 쇠락해 스러지는 성내에 감돌던 찰나,

 

 아래쪽에는, 단단한 바위산의 외벽이.

 

 [ 그럼, 안녕히. ]

 

 낮은 목소리가 흐려지는 가운데 소용돌이가 다시금 휘몰아쳤다. 지형을 한꺼번에 바꿔버리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손길이.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린 천공성의 잔해가 한데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모두를 태우고도 남을 만한 크기의 대형 수레를 만들어 내었다. 떨어진 곳은, 누군가는 와 본 적 있을지도 모르는 광산. 가을 꽃을 근처에서 많이 볼 수 있기에 구절초 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했던가. 아무렴 좋은 일이다. 예전에는 수레가 달렸으나,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운행하지 않는 그곳에 정확히 내려앉았다는 사실만 있으면 아무렴 족할 테니.

 

 그리고, 덩그러니 비어 있는 수레의 손잡이. (아마도 이슈타르)가 챙겼던 손잡이를 꺼내 제자리에 맞추어 끼우자,

 

 털털거리는 소리가 난다. 마치 오래 전 불꽃 정령이 뱃머리에 불을 붙여 배를 나아가게 했던 마냥, 손잡이에서 나는 소리가 바퀴를 슬슬 굴러가게 만들었다. 내내 꺼져 있던 수레 뒤쪽의 등불에 하얀 빛이 들어왔다.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할 모양으로.

 

 철로의 끝에는 어디가 나오지? 광산의 아주 깊은 곳까지는 들어가 본 적이 없기에,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상하게도, 분명 자율적으로 지상을 탐사하러 온 것이겠지만 묘하게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 이끌려 가고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 무엇이든 감으로 믿지 못할 사안이라면 따르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끝을 모르는 철길에서 수레 바퀴와 철로 간의 마찰로 낮은 열이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사이에서 연기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부드럽게 출발한 수레는 사용한 지 오래된 녹슨 철길을 달리고 있음을 믿기 힘들 정도로 매끄럽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조금,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린 천공성, 쓰러지지 않은 군주.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 있지?

 

 도중 때아닌 불길에 휩싸였던 이유 같은 건? 예상하고 있었다는 그 오만함은?

 

 이런, 그 전에 이제 와서 뛰어내리기는 글렀다. 모쪼록 멀미하지 않도록 버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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