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독 청명하고 선선한 날, 딱 방심하기 좋은 날에 위기는 닥쳐오는 법이었다. 그래서 누누이 방심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주 옛적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된 거겠지만, 또 그것을 한두 번 들었다고 착실하게 지켜 내는 것이 인간이었다면 그런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지 않겠지.
으레 이런 식이다.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왜 그 이야기를 새겨 듣지 않은 걸까, 생각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그 ‘으레’에서 약간 벗어난 특수 케이스였다고 어떻게든 해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거대한 자연에 숨겨진 법칙이 제멋대로 예외를 발동해서 구름 한 점 없는 – 비록 보이지 않기에 멋대로 없을 것이라 가정한 것이지만 – 하늘에 돌연 소용돌이가 발생하여 피해 지역의 인간들을 모두 창공으로 끌어올렸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사안에 관해서 만큼은 말이다.
몰아치는 강풍은 에덴에서는 쉬이 볼 수 없었던 날이었다. 아니, 분명 메슈라는 기록 상 대체로 날이 맑고 쾌청한 기후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전부 거짓이었던가? 고향을 잃은 이들이, 무엇을 위해 후손에게 거짓된 기록을 남겨야 했지? 자신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관한 환상적인 로망 비슷한 것을 심어 두어 언젠가는 기필코 되찾게 하기 위한 하나의 초석이었던가? 시덥잖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빠르게 휘감는 기류를 타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조각난 물음표가 소용돌이와 더불어 흩날리는 빗방울에 빠져들었다.
인간은 하늘에 가까워지는 것을 꿈꿔, 예전부터 나는 것을 소망해 왔다. 하는 구절을 어딘가의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제법 가물가물했다. 그 난다는 행위의 정의는 분명, 자신이 원하는 만큼 원하는 정도의 빠르기로 적당히 날 수 있다는 뜻이었겠지. 단순히 사고 비슷한 재해에 휘말려 부유하듯 허공을 막무가내로 떠도는 상황은 옛사람들도 결코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챙겨온 짐이 소용돌이의 저편에서 같이 휘말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힘을 내어, 손을 뻗어도 닿지 않지만. 유감스럽게도.
문득 위쪽을 보았다. 소용돌이의 끝이 우리를 끌어올린 땅이라면, 그 반대편의 끝도 있겠지. 까마득한 어둠에 까무룩 잠긴 그 거대한 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막연히 무언가 있으리라는 짐작만이 들 뿐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늘 저편에서 모여들던 유난히 불길하고 큰 기운이라든지, 그것이 단순히 기우가 아니었음을- 같은 사안.
소용돌이의 위쪽 끝, 태풍의 눈과도 같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어둠이 짙게 내리 깔린 고성. 그 고성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있던 굵은 사슬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풀렸다.
성문이 열린다. 마치, 오랜 시간 고대하던 손님을 정성껏 맞이하기라도 할 마냥.
열린 성문 안쪽엔, 터무니없이 거대한 체스판이 성의 앞뜰을 대신하기라도 하는 듯 깔려 있다. 그 중앙, 처음 체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말도 자리잡을 수 없는 성역과도 같은 곳에는 거대한 연회장을 방불케 하는 규모의 만찬 테이블이.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은 화려한 연회의 음식,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정경은 에덴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우아한 자태의 고성. 소용돌이에 말려들기 전 지상이 시커먼 어둠에 둘러싸여 있던 것과는 별개로, 성벽 안쪽은 터무니없이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적당한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시큰대며 아파 올 정도로.
테이블 위에도, 성내에도 아무도 없다. 메인 디쉬 위에 깔끔하게 반으로 접힌 빳빳한 초대장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 5년 만의 손님들을 위한 약소한 성의 표시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