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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에 찬 성량이 대지 전체를 뒤흔들었다. 봄의 땅에 걸맞지 않는 칼바람이 살갗을 마구잡이로 파고들었다. 크게 휘둘러 땅에 정통으로 내리 꽂힌 창이 날붙이부터 가루로 부서져 허공에 떠돌았다. 창공에 흩어지는 신의 잔재가 하얀 빛에 휩싸였다. 한데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또다시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게 몇 번이고, 모였다가 망가졌다가를 저 혼자서 반복하던 신의 분신은 잘게 부서져 짙은 어둠에 녹아 들었다.

 

 [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

 

 불길 깊은 곳을 부지깽이로 날카로이 긁어 내는 듯한 소리가 허공에서 내려 꽂혔다. 흔히들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라고 하던가, 이런 대사. 누가 위대하고 고매한 신의 분신 아니랄까 봐, 몇 백 몇 천 년 전에나 유행하다 시대에 스러져 이미 진작에 사라졌을 법한 대사를 뱉어 낸 목소리가 긴 노기를 토해 내었다. 내뱉는 울음의 길이가 제법 길다.

 

[ 힘을 선사했을 때에는 활용할 줄도 모르더니, 이제야 간신히 제 손에 쥔 것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되었구나. 빛을 되찾고자 하는 건 욕망이지! 도태된 인간은 질색이나 욕심을 내어 보다 먼 곳의 것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싫어하지는 않았다. ]

 

[ 소리를 잃은 짐승이 드디어 저들의 언어를 되찾은 셈이군. ]

 

 신의 마지막이 아닌, 한낱 분신의 마지막. 그를 쓰러뜨렸다 하여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운명의 축이 비틀리는 것도, 시간의 축이 왜곡되어 과거의 어느 찬란했던 나날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신에게 빼앗긴 빛을 되찾고자 노력하였고, 끝내 신의 분신을 상대하여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기록인에 의하여 후대에 남을 역사는 이러한 류의 짤막한 이야기. 그 어떤 세월의 무게도, 그 어떤 어둠의 잔해도 단어 몇 가지로는 담아 낼 수 없다. 으레 그랬듯이.

 

 푸른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이 다시금 흐드러졌다. 승리의 흔적은 신의 분노로 된통 무너져 내린 성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우뚝 서 지키고 있는 붉은 망루.

 

 바람이 불었다. 이에 흔들려, 가벼이 울린 푸른 종소리가 별하늘에 녹아 들었다.

 

 별이 조금 걷히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있던 달이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의 환상에서는 둥그런 보름이었다면, 이번에는 엷은 빛만을 간신히 몸에 담고 있는 그믐.

 

 다시금 바람이 불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흐르는 대로 지나가는 하나의 선율마냥 부서져 흩어졌다.

 

 꿈결처럼 흩어 지나가는 찬란한 밤.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이 힘이 완전히 풀린 몸. 꿈인가? 아니, 분명 현실일 터다. 승리의 맛을 꿈결에서만 맛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억울하고 또 기가 막힌 처사 아닌가.

 

 노랫소리가 어둠에 스며들어 간다. 바람의 선율, 어둠의 신이 부른다는 것. 그 언저리로 잔잔한 선율이 부드럽게 얹힌다. 평화로운 잠에 빠져도 나쁘지 않다 생각할 법한, 자장가와 비슷한 것.

 

 [ 잠시 잠들거라, 나의 아이야. 새로운 이야기의 서막에 들어서기 전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법이므로. ]

 

 속삭이는 목소리가 부서지는 은색의 별빛에 완전히 스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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