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끝에 난잡하게 엉기는 향이 제법 간질거린다. 시간의 흐름으로 미루어 보아, 지나 온 땅들에서 이 정도 시간이 되면 무언가 나타났던 것 같기도 한데. 퍽 공상에 잠긴 생각을 늘어놓으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달이 떠 있어야 할 시간. 오늘이 보름이었던가, 그믐이었던가? 그런 류의 사소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알지 못한 채로.
미처 보름에 도달하지 못한, 그러나 제법 살이 오른 달이 떠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밤하늘에. 별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시커먼 밤하늘에 누렇게 허연 달이 덩그러니 달려 있다. 누군가 일부러 달아 두기라도 한 마냥 꼭 그렇게.
달이? 거짓말이지, 빛 같은 게 있을 리 없는데. 문득 떠오른 달이 백 년도 더 된 침묵의 시간만큼의 위용을 과시하기라도 하려는 듯, 몸을 천천히 돌려 지상을 내리 비추기 시작했다.
확장된 동공에 가득 들어차는 빛. 넘실대는 흰 물결과 그 너머의 시퍼런 밤.
암흑에서 조금 벗어나,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한 하늘.
새카만 어둠이 짙게 내리 깔려 있던 땅에서 문득 노란 불빛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위로, 보다 더 위로. 샛노란 불빛 덩어리가 한데 모이는가 싶더니 불꽃과도 같은 형태로 변모하였다. 따스한 온기도 무엇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있는지조차 몰랐을 형체의 금방 스러져 갈 불꽃들이 곳곳에서 커다란 반딧불마냥 위로 떠올라 검푸른 하늘에 빛을 피웠다.
이런 류의 현상을 지상에서는, 도깨비불이라 불렀던가.
끝이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져 나온 불들이 하늘 곳곳으로 흩어져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던 즈음- 빛이 한 데 뭉치며, 거대한 불꽃이 되었다. 저 너머의, 닿지 않는 백색의 달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빛의 덩어리가 공중에 덩그러니 떠올랐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이질적인 광경.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낯선 감각을 수없이 느껴 왔다. 지상이란 으레 그런 곳이곤 했으니.
노란 불꽃 안쪽으로 무언가의 형상이 떠오르다가 스러져 갔다.
은빛 별이, 어쩌면 익숙할지도 모르는 커다란 뱀이. 그 너머로 갈라지는 파도와, 뱃머리에서 타오르는 횃불이 하나. 엉망진창으로 높게 쌓인 책더미와 건너편의 수레에 수북하게도 쌓인 밀.
커졌던 노란 불꽃이 서서히 작아져 노란 재가 땅에 떨어졌다.
불꽃이 사라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허공에서 들려 오기 시작했던 잔잔한 선율 또한, 그와 함께 사라져 완전히 가라앉았다.
푸른빛이 완전히 사라져 간다. 남은 건, 또다시 어둠뿐.
아니, 정정하자. 어둠과 함께 남은 노란 빛의 잿더미가 하나.
그리고 어둠을 밝힐, 우리의 등불이 여전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