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에 내렸던 소나기를 머금은 공기가 여름답지 않게 제법 찼다. 괴생명체, 통칭 [ 당근이 ] 가 내뿜던 스튜 특유의 열기가 차가운 수증기에 묻혀 느릿하게 가라앉는 것도 순간의 일이었다.
거짓말처럼 보통의 당근 크기로 줄어든 [ 당근이 ] 의 주위로 연기가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빛을 내던 샛노란 눈동자는 결국 무엇을 위해 발버둥쳤었던가. 아니, 샛노랑이 아니라 보다 밝은 주황색 쪽이었나? 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렴 상관 없는 일이다.
제가 잃어버린 스튜 재료를 수거하러 쭈뼛거리며 나온 주민이자 마법사인 이는 생각보다 더 왜소한 인상이었다. 본인의 생일을 맞아, 시장에서 재료를 사 맛있는 요리를 스스로에게 대접하려 했다는데. 주걱 대신 망가진 스태프로 스튜를 휘저었을 때부터 그의 요리 실력을 짐작했어야 했음을.
멀쩡한 주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냄비는 된통 타 버리고, 급하게 켠 물은 끝없이 쏟아져서 결국 자신의 주방마저도 난장판.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하여 입에 붙는 대로 기억나는 마법을 휘갈겼으나 불을 끄고 수도꼭지를 잠근다는 걸 그만, 스튜에 막 몸을 담그기 시작한 당근에게 전혀 다른 마법을 걸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때아닌 밤중, 사건사고의 발단은 생각보다 더욱 담담한 일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별 거 아닌 일로도, 고작 이 정도의 일로도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겠지.
“ 돌아갈까. “
누군가에게서 입버릇처럼 튀어나온 말이 고요 속에 퍼졌다. 어찌 되었든 일은 잘 끝났고, 서탑의 관계자들로부터도 감사 인사를 받았고. 남은 건 내일의 식재료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나쁘지 않은 사실.
습한 공기가 폐에 들어찬다. 코끝에 막 익기 시작한 당근의 냄새가 스친다. 지난 몇 시간 동안 지겹도록 맡은 그 향이.
……내일 점심은 카레가 좋을지도. 당근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