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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관한 모든 기록은 백 년 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당 시점에서 재구성된 것입니다. 본 문서 열람 시, 현재 지상의 모습과는 상당수 다른 점이 있다는 점을 유의하여 주십시오.

​에덴, 지상 기록 관리 부서 담당자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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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 신 이그니사의 화신이 마음 한구석에 깃들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 부족. 이는 사시사철 덥고 습한 여름이 지속되는 탓에 불쾌 지수가 높은 편이라, 다른 일족과는 달리 사람 간의 불화가 잦았기에 내려오는 속설이었다. 덕분에 아이슈타트의 사람들은 어딜 가도 한 성깔 한다는 고정 관념이 생겼으나, 지나치게 일반화한 편견이다. 이렇듯 사람 간의 사소한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함에도 불구, 큰 싸움이나 인명 피해로는 결코 번지는 일이 없었다는 점에서 평화의 신 포이악센의 가호가 있다는 농담 겸 속설도 내려왔다.

기후

 사계절 중 여름만이 존재하던 세계의 구역. 쨍한 햇볕, 이글거리는 태양, 햇빛을 받아 찬란히 반짝이는 물방울. 1년의 5/6 이상이 화창하고 맑은 날씨였다. 아주 가끔씩 비가 오기도 하였으나, 그마저도 그리 많이 내리는 편은 아니었다. 허나 1년에 딱 한 번, 평화의 달에 약 보름 가량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기간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를 매년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신의 도움이라 여겨, 물의 신의 이름을 따서 '아퀴네이아(Aquineia)'라 명명하였다.

지형

 '지금 서 있는 곳으로부터 앞으로 세 걸음 가서 땅을 열 번만 파도 물이 나온다.'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을 정도로 곳곳에 물길이 흐르고 수맥이 위치하여 물이 풍부했던 지역. 하늘에 뜨거운 태양이 있다면 땅에는 찬 물이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태양이 얼마나 뜨겁게 내리쬐든 간에 땅에서 솟아나는 모든 물은 차가웠다. 그들은 이 물을 생명과 동일하게 여겼으며, 아이슈타트를 아퀴나스의 축복이 내린 땅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 탓에, 간혹 아퀴네이아가 예년보다 길게 지속되는 해에는 수로가 범람하여 수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남쪽 지역은 넓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는데, 이는 에덴과 맞닿은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가파른 절벽이나 높은 산, 울창한 밀림 등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실로 대조적이었다. 아이슈타트의 주민들은 이 바닷길을 이용하여 다른 계절의 지역으로 여행을 가거나, 상업 활동을 하거나, 이주하였다.

 아이슈타트의 대지는 크게 네 분류로 나눌 수 있었는데, 남쪽의 해안가에는 가늘고 고운 모래가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위치하였다. 웨리스와 맞닿은 동쪽에는 울창한 밀림을 지나 높은 산이 이어졌으며, 메슈라와 맞닿은 서쪽에는 가파른 절벽이 있었다. 북쪽 지역의 수로가 길고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넓은 평원을 지나면 인류의 낙원, 에덴에 닿을 수 있었다.

산업

 후텁지근한 기후 탓에 농산물은 아이슈타트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할 수 있어, 농업보다는 물길을 통한 무역업이나 상업이 발달하였다. 밀림과도 같이 빽빽한 숲 속의 높은 나무들에는 독특한 열매가 많이 자라고 있었으나 그들 중 먹을 수 있는 과일은 별로 없었기에. 이렇듯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후 대신 아이슈타트에서만 나는 특산물이 존재하였다. 이들은 주로 차가운 수로 깊은 바닥에서 건져내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원석들이었는데 이들 중 고급 공예의 재료로 쓰이는 것들이 많았다. 타 지역과의 교류는 주로 아이슈타트의 특산 자원과 타 지역의 식량을 맞바꾸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동 생활이 잦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럴 때마다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는 기술을 필요로 하였다. 함께 유랑하는 무리 안에는 반드시 건축 기술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아이슈타트에는 간단한 건설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비록 한 곳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며 발전을 일구어 나가는 형태가 아니었기에 기초적인 기술의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지만, 튼튼한 건물의 기초를 다지고 빠른 시간 내에 완성하는 건축에서만큼은 그들을 따라오는 기술자들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의식주

 더운 날씨 탓에 전반적인 옷차림은 하늘하늘하고 가벼운 편이며, 성별을 불문하고 맨살을 드러내는 부위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은 편이었다. 남쪽의 해안 지방의 거주민들은 아예 맨발로 다니는 경우가 많았으며, 다른 지역의 주민들도 가벼운 샌들을 신는 것에서 그쳤다. 워낙 오랜 기간 쨍쨍한 햇볕 아래서 살아 왔기에 웬만한 더위에는 끄떡 없었지만, 내리쬐는 햇볕이 지나치게 강하여 피부가 따가워질 정도일 때에는 얇고 통풍이 잘 되는 재질의 기다란 숄이나 가운을 걸치곤 했다.   

 대지 곳곳으로 나 있는 수로와 곳곳에 위치한 호수 등에서 고기잡이나 어패류 채취 등 채집 활동이 잦았다. 일부에서는 물고기를 양식의 형태로 기르자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도 하였으나, 대지 전역에 풍부한 물 탓에 식량 부족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기에 채집 대신 사육을 통하여 일용할 양식을 직접 생산해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밀림과도 같은 빽빽한 숲의 높은 나무들에서는 독특한 열매와 다양한 식물이 자라나고 있었으나, 이들 중 식용으로 섭취할 수 있는 개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괜한 호기심에 아무거나 입에 대었다가 소화불량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정도가 심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도 하였다. 여타 농산물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소규모의 농업 활동을 하기도 하였지만 주로 해안의 소도시들을 중심으로 타 지역과의 교류가 이루어져 곳곳으로 유통이 되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해안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가 존재하였으며, 지역 곳곳으로 뻗어나간 자연적인 수로를 이용한 교역이 잦아 소규모의 부락이 곳곳에 발달하였다. 소규모의 집단 몇 개가 모여 소규모의 부락을 곳곳에 형성하는 식.

 더운 기후 탓에 불쾌 지수가 높아, 사소한 일이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싸움이 여기에서 더 커지는 일은 없었는데, 이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동하는 식으로 생활하는 유목 집단이 많았기 때문. 이러한 유랑민 문화가 만연했기에 집단 구성원 간의 결속력은 평균적으로 그리 높지 못하였으나, 간혹 예외적으로 서로를 끔찍히 아끼는 부락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태초부터 워낙 한 곳에 잘 머무르지 못하기도 하였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던 부족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그 자유를 추구하는 습성만큼은 어디 가지 않고 꾸준히 내려오고 있다 전해진다.

정치

 정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발달한 사회가 구성되지는 못하였다. 워낙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거나 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일족이었기에, 누구도 그들의 위에 군림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들의 발 아래 짓밟히지 않았다. 사람들이 개중 많이 모여 살던 해안가의 일부 소도시에서마저도 특별히 도시를 관리하는 시장은 없었으며, 도시의 광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소규모의 관청만이 존재하였다.

문화

 아퀴네이아 기간이 완전히 지난 후, 남은 평화의 달 기간 동안에는 '무욕의 축제'가 있었다. 이 기간에는 수로를 통한 상업적인 교류 행위를 일절 행하지 않았으며, 금전적인 대가도 무엇도 없이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곳곳에 모여 서로가 가진 것을 흔쾌히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신에 대한 신앙심 자체가 특별히 뛰어난 일족은 아니었으나, 유독 물의 신 아퀴나스에 대한 숭배 사상만큼은 강하였다. 해안가의 도시에는 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이 도시마다 하나씩 있었으며, 이동 생활을 하는 무리들마저도 물의 신에게 기도드리기 위한 파도 문양이 그려진 유리잔을 기본으로 하나씩 갖추고 있을 정도.

 아이슈타트는 일 년 내내 여름의 계절이 계속되었기에 낮이 길고 밤이 짧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 낮을 즐기며 활동하다가 짧은 밤에는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일부 야행성의 사람들은 굳이 짧은 밤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즐겼다. 대체로 맑은 날씨가 지속되었기에 아이슈타트의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별의 움직임을 읽어 내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취미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을 세간에서는 '별의 가호를 받는 주술사' 혹은 '하말(Hamal)'이라 불렀다. 이후 아이슈타트의 에덴 근처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 중 일부는 세계에 어둠이 내리깔리기 전날 밤, 그들이 전한 예언을 듣고서는 에덴으로 몸을 옮겨 생존하였다고 한다.

부족 특징

 몸을 크게 뒤덮는 문신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며, 문신의 종류는 제각각이었다. 간혹 가족 혹은 친한 사람들끼리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여 같은 문신을 새기기도 하였다. 같은 종류의 문신은 곧 제 신체의 일부마저 공유한다는 친밀감을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았다.

 자주 이동하였고, 그때그때 목적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사는 경우가 허다하였기에 부족 전체가 향유하는 특징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것은 딱히 없었다. 일부 소규모 부락 단위로 내려오는 독특한 전통이 있었다고들 하나, 이제 와서는 전부 아무렴 상관 없는 일이 되었다.

부족 역사

 이동 생활이 많았고, 해안가의 도시를 제외하고서는 집단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기에 실생활의 지혜나 옛날 이야기 정도만 구전되어 내려올 뿐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은 딱히 없었다. 현재 에덴의 주민들이 아이슈타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아이슈타트에 다녀왔던 에덴의 사람들, 혹은 세계에 빛이 사라지기 직전에 에덴으로 이주해 온 일부 아이슈타트 거주민들로부터 들은 말이나 여타 이종족이 들려준 이야기가 전부다. 아이슈타트의 하말 중 일부는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세세하게 기록했다고들 하나, 현재 에덴에서 하말은 찾아볼 수 없기에 그들이 남긴 기록에도 접근할 수 없다.

 아이슈타트 전역에 걸쳐 살아가던 드래곤 중 일부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드래곤과의 혼혈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드래곤의 날개를 지니고 태어났기에 혼혈의 수는 적어도 눈에는 잘 띄었다고. 일부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드래곤도 하말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설이 내려오지만, 이 또한 현재 기록에 접근할 수 없기에 사실 여부 판독이 어렵다.

 바다와 가장 맞닿아 있는 곳이나 인어와는 전통적으로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다. 웨리스의 이들을 제외한 뱃사람을 노래로 홀리는 인어의 희생자 중 대부분은 아이슈타트에 거주하던 이들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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